브랜드 백과사전 - 샤넬의 역사

반응형

1) 창업 초창기 (1913~1924)

부티크를 오픈한 후, 가브리엘 샤넬은 휴양지에 어울릴 만한 단순하고 편리한 옷을 디자인했다. 그 중 첫 번째로 출시된 의상은 여성복 ‘카디건(Cardigan)’이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항구도시인 도빌의 날씨가 차고 습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폴로 경기장에서 보온을 위해 남성들이 착용했던 니트 셔츠에서 힌트를 얻어 카디건을 개발했다. 카디건은 기존에 거추장스럽던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착용할 필요 없이 느슨하고 헐렁하게 디자인된 점이 특징이었다.

샤넬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9년) 때였다. 전쟁 발발과 함께 여성들의 노동력이 요구되어 여성들은 화려한 장식이 어우러진 기존의 의복 스타일보다는 샤넬의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다. 샤넬은 남성 속옷에 사용되었던 얇고 가벼운 저지(Jersey) 천을 투피스에 활용해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투피스는 1916년 3월에 파리인의 엘레강스(les Elégances Pariennes) 잡지와 같은 해 미국의 유명 잡지인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 소개되었고, 1917년 2월 미국의 보그(Vogue)지에도 소개되어 극찬을 받았다.

대외적인 명성을 얻게 된 샤넬은 1918년에 파리 패션의 중심지였던 캉봉가 31번지로 진출했다. 이후 샤넬은 엉덩이 부분 옆 선에 주름을 넣어 만든 샤넬 라인 원피스를 비롯해 큰 호주머니를 단 짧은 소매 재킷(Jacket), 길고 따뜻한 머플러(Muffler) 등을 추가로 출시하여 1920년대 자유로운 복장을 원하던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1921년, 샤넬은 첫 번째 향수이자 최초의 배합 향수인 ‘N°5(Number Five)’를 출시했다. 샤넬은 ‘N°5’의 성공에 이어 1922년에는 ‘N°22’, 1925년에는 가드니아(Gardenia), 1926년에는 브와 데 질(Bois des Iles), 1927년에는 뀌르 드 뤼시(Cuir de Russie)라는 향수를 잇달아 출시했다. 샤넬은 1924년에 향수와 화장품 라인을 제조 · 판매하는 별도의 샤넬 향수회사를 설립했다.

2) 코스튬 주얼리 출시 ~ 제2차 세계대전(1924~1935)

1924년 샤넬은 최초로 코스튬 주얼리(Costume Jewelry, 모조 보석, 모조 비즈 등을 소재로 제작한 주얼리)를 출시했다. 모조 소재 액세서리에 대한 비난이 있던 때였지만 가브리엘 샤넬은 ‘보석은 부나 집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위한 액세서리이어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을 강조했고, 자신도 모조 진주를 보란 듯이 하고 다녔다. 이후 색색의 보석이나 비잔틴 십자가로 장식한 모조 진주목걸이 등은 샤넬 장신구의 고전이 되었고,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1929년 샤넬은 캉봉가에 액세서리 부티크를 정식으로 열었고, 1934년에는 패션 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1926년 샤넬은 여성용 야회복인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출시했는데, 이 제품은 같은 해 5월 보그(Vogue)지에 ‘샤넬의 포드(Chanel’s Ford)’라고 소개했다. 당시 포드 Model T가 대중화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는데 리틀 블랙 드레스도 파리의 유니폼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샤넬의 포드라는 별칭이 생겼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상복에만 쓰이던 검은 색상을 처음으로 여성의 일상복에 적용한 것으로, 이후 40% 이상의 샤넬 제품에 검은색과 흰색이 사용됐다.

샤넬이 파인 주얼리(Fine Jewelry, 고가의 보석으로 만든 고급 주얼리)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32년 샤넬은 값 비싼 다이아몬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이아몬드 주얼리 전시회인 비주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을 개최했다. 하지만 샤넬은 값비싼 주얼리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해석하여,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전시용 케이스와 검정 벨벳(velvet)이 아닌 마네킹에 전시하여 보석 세공사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1935년 샤넬은 4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캉봉가에 5개의 빌딩을 소유할 만큼 성장했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의 발발과 함께 액세서리와 향수 점포만 남긴 채 부티크 문을 닫아야 했다.

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가브리엘 샤넬의 죽음(1936~1971)

1954년, 15년간 파리를 떠났던 샤넬이 71세의 나이로 돌아와 부티크를 다시 열고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여성들은 전쟁 동안 입었던 실용적인 의상에서 벗어나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은 코르셋과 부풀린 스커트로 허리 라인을 강조한 뉴룩(New Look)을 출시했고, 이는 패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샤넬은 이러한 트렌드가 특정 상류 계층만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고, 1954년 2월 저지, 진주 등을 결합한 편안한 의상들이 주를 이룬 샤넬 컬렉션을 선보였다. 파리와 유럽의 비평지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표회’라며 혹평한 반면, 미국의 패션계에서는 ‘현대 여성의 욕구에 부합하는 옷’이라며 크게 호평했다.

1954년 샤넬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트위드 소재(Tweed, 순모로 된 스코틀랜드산 직물)를 활용해 샤넬 슈트(Chanel Suit)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계절에 관계없이 여러 해 동안 입을 수 있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스테디셀러(Steady Seller, 꾸준히 잘 팔리는 제품)로 자리 잡았다. 1955년 2월에 샤넬은 금색 체인이 달린 퀼팅 숄더백(Quilting shoulder bag)을 출시했는데, 출시 날짜를 따서 2.55백이라고 불렀다.

1957년 샤넬은 미국 댈러스(Dallas)에서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 오스카상(Fashion Oscar)’을 수상했다. 1971년 1월 10일, 샤넬은 87세의 나이로 37년 간 머물렀던 파리 리츠호텔(The Ritz Paris)에서 별세했다. 리츠호텔에서는 샤넬을 기리기 위하여 그녀가 머물던 방을 ‘코코 샤넬 스위트 룸(Coco Chanel Suite)’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4) 칼 라거펠트 영입 이후(1982~2013)

1982년,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영입되었다. 당시 칼 라거펠트는 파리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고급 여성복)가 아닌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러한 그의 경력이 거센 반발과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지만 1983년 1월에 가졌던 첫 데뷔 무대를 성공시킨 이후, 칼 라거펠트는 기존 샤넬 아이템과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조합시켜 샤넬을 젊고 캐주얼한 브랜드로 변화시켰고,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샤넬은 1984년에 향수 코코(Coco)를 새롭게 출시했고, 1987년에는 시계 부서를 설립하여 샤넬 최초의 시계인 프리미에르(Première, 최고)를 출시했다. 1993년에는 샤넬 최초의 파인 주얼리 컬렉션을 출시했고, 1999년에는 스킨 케어 화장품인 프레씨지옹(Précision, 정밀함)을 출시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2005년, 샤넬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샤넬전(Exhibition CHANEL)을 개최했고, 2008년에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 함께 움직이는 전시회인 모바일 아트(Mobile Art)전을 열어 1년간 아시아와 미국 등을 순회했다. 이 전시회에는 약 20여 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는데, 샤넬의 2.55 핸드백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 등이 전시되었다.

4. 샤넬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까멜리아(Camellia)

가브리엘 샤넬은 장수와 풍요, 그리고 영원을 상징하는 까멜리아(Camellia, 동백꽃)가 악한 기운을 없애준다고 믿어, 이 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한 까멜리아를 활용해 그녀의 리틀 블랙 드레스에 악센트를 주었다. 까멜리아는 숙련된 공예 장인들의 수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 샤넬의 공예 장인들은 꽃의 모양과 형태를 잡아주기 위해 꽃잎을 하나하나 하트 모양으로 자르고 암술 모양을 섬세하게 중앙에 세공해 ‘까멜리아’ 주얼리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2) 퀼팅 패턴 숄더백(Quilting Pattern Shoulder Bag)

샤넬은 1955년에 퀼팅(Quilting) 패턴 숄더백을 출시했다. 이 백은 숄더 체인과 퀼팅 패턴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숄더 체인은 샤넬이 스트랩이 있는 군인 가방에서 착안한 것으로, 클러치 백(Clutch Bag, 손에 드는 여성용 작은 지갑)에 끈을 달아 준 것이었다. 이로써 여성들은 가방을 착용하고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퀼팅 패턴은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비질을 하는 것으로 샤넬은 퀼팅으로 다이아몬드 패턴을 표현했고, 지금까지도 이 퀼팅이 적용된 핸드백은 샤넬의 대표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3) 샤넬 재킷의 4가지 디테일

1954년, 화려한 장식이 트렌드였던 시절에 샤넬은 남성복 재킷에 사용되던 소재들을 변형시켜 실용적이면서도 완결성이 돋보이는 옷을 디자인했다. 이때 샤넬이 재킷에 적용한 요소는 4가지였다. 앞 주머니(여성용 의복에 적용된 적이 없었음), 매칭 혹은 대조적인 브레이드(Braid, 실을 꼬아서 만든 장식용 수술) 장식, 샤넬 로고가 새겨진 단추(당시 대부분의 단추에는 구멍이 있었음), 그리고 실크 안감에 꿰맨 섬세한 체인 장식이었다. 체인 장식의 경우, 체인 무게 때문에 재킷이 평평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이후 4가지 요소는 샤넬 재킷을 대표하는 특징이 되었다.

샤넬이 여성복 최초로 적용한 앞 주머니와 샤넬의 브레이드 장식

단추 구멍을 없애고 브랜드 로고를 새긴 샤넬 단추

샤넬 재킷을 평평하게 유지하기 위해 안감에 꿰맨 체인 장식

5. 샤넬의 대표 상품 라인

샤넬은 크게 의류, 핸드백, 액세서리가 포함된 ‘패션’, 향수 메이크업이 포함된 ‘뷰티’, 그리고 ‘시계&파인 주얼리’ 등 크게 3가지 상품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샤넬의 대표 상품은 샤넬N°5와 레드 립스틱과 코스튬 주얼리, 리틀 블랙 드레스, 2.55 핸드백 그리고 J12 워치 등이 있다.

1) 샤넬 N°5(Chanel N°5)

샤넬N°5(Chanel N°5, 샤넬 넘버 파이브)는 1921년에 조향사인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가 만든 샤넬의 첫 번째 향수이다. 이 제품은 장미 향과 라일락 향 등 단일 향수가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재스민 향기를 기본으로 80여 가지의 성분들을 배합시켜 제조되었다.

향수 이름에 왜 숫자 ‘5(파이브)’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전해지고 있다. 샤넬 N˚5가 샤넬에게 보내진 향수 샘플 중 5번째이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5’가 샤넬의 행운의 숫자였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진 않다. 당시 드라마틱한 향수 이름들 사이에서 N°5라는 이름은 차별성이 있었고, 반듯한 정사각형의 모던한 병 디자인과도 잘 어울렸다. N°5는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며 샤넬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고, 이후 팝 아티스트(Pop Artist)로 유명한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이 향수를 실크 스크린(Silk Screen)으로 묘사해 대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2) 레드 립스틱(Red Lipstick)

레드 립스틱은 1924년에 샤넬이 처음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는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립스틱을 바르고 색상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그 위에 파우더를 덧발랐다고 한다. 가브리엘 샤넬은 그 중에서도 주홍빛을 띤 레드를 특히 좋아했는데, 자신의 기호에 맞춘 레드 색상을 발표하고 이를 ‘샤넬 레드(Chanel Red)’라고 불렀다.

피터 필립스(Peter Phillps)와 같은 샤넬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Make-up Creator)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레드 컬러 중 샤넬만의 특별한 레드 컬러를 찾아 세계여행을 다녔다. 이 때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고 영감을 받았는데, ‘루주 드 서울(Rouge de Seoul)’도 그 중 하나다. 2002년 한 · 일 월드컵 때 한국을 방문했던 샤넬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는 서울을 물들였던 붉은 악마의 물결에 큰 감동을 받았고, 파리로 돌아가 태극기의 레드 색상과 같은 레드 립스틱을 한정 상품으로 출시했다.

3) 코스튬 주얼리

가브리엘 샤넬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교회의 장식에서 심플한 그녀의 패션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코스튬 주얼리’의 화려함을 발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상황이 여의치 못한 점을 감안한 샤넬은 코스튬 주얼리 라인을 출시하게 되었다.

당시 샤넬은 러시아 정원, 왕의 왕관과 십자가의 화려한 모습에 영향을 받아 코스튬 주얼리로 재현했고, 1924년에는 영국의 부호였던 웨스트민스터 공작(Duke of Westminster)에게서 받은 희귀하고 귀한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코스튬 주얼리로 재현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사망한 후, 이 보석들은 천천히 잊혀졌지만 1983년에 칼 라거펠트는 가브리엘 샤넬이 즐겨 사용했던 소재들을 재해석해 팔찌와 목걸이, 귀걸이 등 다양한 코스튬 주얼리를 다시 출시했다.

4) 리틀 블랙 드레스

다양한 종류의 컬러들이 넘쳐나던 1920년대, 샤넬은 상복을 상징하는 컬러였던 블랙을 활용하여 ‘리틀 블랙 드레스’를 제작했다. 1926년에 처음 출시된 이 제품은 남성들의 속옷으로 쓰였던 저지 소재를 활용하여 여성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전체 라인을 디자인했고 크레이프(Crepe), 레이스(Lace) 등을 이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이 제품의 성공으로 블랙과 화이트의 조합은 샤넬의 대표 색상이 되었고, 일반 의복에서 자주 활용하는 대표적인 색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칼 라거펠트는 리틀 블랙 드레스의 상징적인 의미를 기리기 위해 실크(Silk)뿐만 아니라 시폰(Chiffon), 니트(Knit), 벨벳(Velvet), 모슬린(Muslin), 새틴(Satin)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여러 차례 재 디자인한 제품을 출시했다.

5) 2.55백

‘2.55백’이란 명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1955년 2월에 출시되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마드모아젤 락(Mademoiselle Lock, 마드모아젤은 여성을 높이 부르는 표현으로 가브리엘 샤넬을 부르는 명칭으로 자주 사용됨)’이라는 네모난 잠금 장치가 있고, 쇠사슬처럼 꼬아진 금속 숄더 체인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체인은 스트랩이 달린 군인 가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005년에 칼 라거펠트는 2.55백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2.55백의 최초 모델을 재해석한 가방을 선보였는데, 마모된 흔적을 표현한 빈티지 제품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6) J12 워치

‘J12 워치’는 샤넬의 디자이너인 자끄 엘뤼(Jacques Helleu)가 바다 항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2000년 11월에 샤넬의 기본적인 색상 코드인 흰색과 검은색 두 종류로 출시되었다. 이것은 샤넬에서 처음 선보인 스포츠 시계로 샤넬 최초의 유니섹스(Unisex, 남여공용) 디자인이었다. 자끄 엘뤼에 따르면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광택이 나는 블랙 워치’를 만들고자 했는데, J12 워치는 그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시계의 특징들을 두루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J12 워치는 12미터급 J-class요트 대회에서 제품의 이름을 따왔으며, 광택이 나고 스크래치에도 잘 견디는 세라믹 소재가 사용되었다.

 

6. 샤넬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샤넬 그룹

현재 샤넬 그룹은 베르타이머 일가의 알랭 베르타이머(Alain Wertheimer)와 제라드 베르타이머(Gérard Wertheimer)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비상장 개인기업으로 기업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샤넬의 두 CEO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샤넬의 사업부는 ‘패션’, ‘뷰티’, ‘워치&파인 주얼리’ 3개로 구성되어 있고, 칼 라거펠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다.

2) 브랜드 가치

1957년 가브리엘 샤넬은 미국 댈러스(Dallas)에서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 오스카상(Fashion Oscar)을 수상했다. 1959년에는 샤넬 ‘N°5’ 향수병이 최고의 디자인으로 인정받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다.

1986년 칼 라거펠트가 만든 가을겨울 샤넬 컬렉션은 ‘황금 골무상’(Le  d’Or Golden Thimble Award, 파리 전체 컬렉션 중 뛰어난 컬렉션을 선발해 연 2회 수여함)을 수상했고, 1988년에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A, 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가 샤넬 하우스와 칼 라거펠트에게 국제 패션 특별상을 수여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