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백과사전 - 에르메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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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르메스의 역사

1) 브랜드 설립 ~ 사업 영역의 확장(1837~1901)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에 의해 설립된 에르메스는 품질에 대한 헌신, 청렴함으로 인해 빠른 시간 안에 유명해질 수 있었다. 1867년, 세계 각국의 새로운 공산품을 소개하는 축제형태의 산업 박람회였던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가 파리에서 열렸는데 티에리 에르메스는 이 만국박람회에 자신이 생산하는 마구 제품을 가지고 참가하여 1등상(First Class Medal)을 수상하며 에르메스 마구의 우수한 품질과 견고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를 통해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와 같은 왕족도 에르메스의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1831년에 태어난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1859년부터 아버지를 도와 에르메스의 비즈니스에 합류했는데, 1878년 아버지인 티에리 에르메스가 세상을 뜨자 가업을 계승했고, 같은 해 아버지가 1867년에 탔던 만국박람회 1등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1880년,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Palais De L’Elysee) 인근에 위치한 파리의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Faubourg Saint Honoré 24)에 마구를 취급하는 새로운 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에르메스 본사와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가 존재하는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는 당시 부유한 고객들이 접하기 쉬운 장소였다. 에르메스는 전 세계의 왕실, 귀족에게 안장과 마구용품을 납품하는 동시에, 도시화, 산업화에 따라 마차를 대신하는 자동차의 수가 점차 증가하자 마구용품 이외에 여행용품과 가방과 같은 생활용품으로 새로운 사업을 창출해 나갔다. 1900년, 아르헨티나(Argentinean) 카우보이의 새들백(Saddle Bags)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오뜨 아 크루아(Haut A Courroie)’ 백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새들 백은 카우보이들이 마구를 운반하기 편리하도록 기능적으로 디자인된 것으로 훗날 에르메스 버킨(Birkin) 백의 원형이 되었다.

2) 에르메스 형제의 3세대 경영 ~ 에르메스 사륜마차 로고의 탄생(1902~1950)

1902년, 샤를 에밀 에르메스의 두 아들인 아돌프 에르메스(Adolph Hermès)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Emile Maurice Hermès)가 합류하여, 에르메스는 ‘에르메스 형제(Hermès Frères)’라는 이름으로 3세대 경영에 들어갔다. 이 시기 에르메스는 고급 마구용품을 개발하고 제품 종류를 다양화하면서 유럽, 북아프리카, 러시아, 미주 그리고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상류층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당시 제정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Nikolai II)도 에르메스의 고객이었다.

1914년, 아돌프 에르메스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 형제는 80여 명의 마구 직공들을 고용할 정도로 가업을 발전시켰다. 당시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 기병의 물품을 만들 가죽을 구입하는 임무를 가지고 미국에 파견되었는데, 이미 대량생산의 시대에 진입한 미국에서 교통수단의 상당한 발전과 그에 힘입어 여행 가방 산업이 팽창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또한 그때까지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던 지퍼(Zipper) 잠금 장치를 발견했다.

1918년 에르메스의 단독 대표가 된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전쟁 이후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에르메스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미국에서 발견한 지퍼에 대한 프랑스 내 전매권을 획득하여 가죽 제품과 패션 제품에 과감하게 사용했다. 또한 마구상으로 시작하며 획득한 기술인 에르메스의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마구 안장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바느질 기법)’ 기술을 핸드백과 여행 가방에도 적용하여 고급스러운 가죽 제품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다양해진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여 여행, 스포츠, 자동차용품, 의류, 실크 스카프, 벨트, 장갑, 보석, 팔찌, 시계에 이르기까지 제품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시켰다.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3명의 사위 로베르 뒤마(Robert Dumas), 장 르네 게랑(Jean Rene Guerrand), 프랑시스 푸에쉬(Francis Puech)는 장인을 도우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휴양지 곳곳에 새 매장을 설립하는 한편 1924년에는 미국에 진출했다. 1929년에는 에르메스의 여성복 라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대공황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침체되어 있던 1930년대, 에르메스는 당시 소비자들이 선호하던 사용용도가 분명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생산했다. 켈리(Kelly) 백으로 알려진 핸드백과 가죽 아젠다, 삭 아 데페쉐(Sac A Depeches, 기자용 가방), 남성용 브리프 케이스(Brief Case), 샹 당크르(Chaîne D’Ancre, 로베르 뒤마가 부두 근처를 산책하며 배에 연결된 닻을 보고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은팔찌), 승마복 등 훗날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이 된 제품들은 모두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선보여진 것이었다.

1937년은 에르메스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에르메스의 헤리티지(Heritage, 기업이나 제품의 전통이나 오랜 역사를 나타내는 유산)인 말과 관계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큰 관심을 보이며, 점심시간이 되면 드루(Druout) 경매장을 방문하여 눈에 띄는 물건을 수집하곤 했다. 그렇게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수집해온 그림, 서적, 예술품 컬렉션은 그가 사용하는 사무실에 모아져 1937년 에르메스 박물관으로 개관되었고 현재까지도 이 박물관은 유지되고 있다. 많은 에르메스의 디자이너들은 이 곳의 물품을 관람하면서 영감을 받아 스카프의 패턴 등 에르메스의 아이템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1945년, 에르메스는 에르메스의 로고(Logo)인 사륜 마차 ‘깔레쉬(Caleche, 마차)’를 법률적 효력을 가진 상표로 등록했는데, 이 로고 역시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수집한 프랑스의 화가 알프레드 드 드로(Alfred de Dreux)의 19세기 석판화 '르 뒤끄 아뗄'(Le Duc Attele)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그림 속에는 당시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뒤끄’라는 고급 마차가 마부 석이 빈 채로 묘사되어 있었는데, 이 그림을 활용한 에르메스의 로고는 에르메스가 고삐를 조정할 고객을 기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3) 로베르 뒤마의 경영 ~ 지주회사 설립(1951~1977)

로베르 뒤마는 1951년 장인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사망하자 가업을 계승하고 동서인 장 르네 게랑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며 에르메스를 경영했다. 로베르 뒤마는 사륜마차 로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오렌지 상자로 상징되는 브랜드 이미지를 발전시켜갔으며 1951년, 에르메스의 첫 번째 향수인 ‘오드 에르메스(Eau d’Hermès)’를 출시했다.

1920년대 에르메스의 포장박스는 하얀 색에 금색 줄이 들어가 있는 형태였고, 점차 제품 군에 따라 상자의 색상도 다양해졌다.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현재의 오렌지 색상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전쟁으로 인해 염료가 부족하였던 시기에 오렌지 색이 천연 가죽 색과 가장 흡사했고 또 가장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베르 뒤마는 이런 오렌지 색을 과감하게 사용할 것을 결정했고 이후 오렌지 색상은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고유 색상이 되었다. 에르메스 포장은 오렌지 색을 바탕으로 브라운 색상의 라이닝과 에르메스 로고인 깔레쉬가 새겨져 있다.

경영학을 전공하기 이전에 원래 건축을 공부한 바 있었던 로베르 뒤마는 함께 작업하는 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받아 에르메스 고유의 스카프인 ‘까레(Carres)’를 디자인하는 실크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했다.

또한 로베르 뒤마는 에르메스의 대표 제품인 켈리 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956년, 모나코의 왕세자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에르메스의 ‘쁘띠 싹 아 끄로와(Petit Sac A Courroie)’를 들고 임신한 배를 가리고 있는 사진이 ‘라이프(Life)’ 잡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 백을 켈리 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로베르 뒤마는 직접 모나코 왕실에 찾아가 이 가방의 이름을 켈리라고 지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켈리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1976년 에르메스 그룹은 지주회사를 설립하여 띠에리 에르메스의 여러 자손들이 함께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4)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의 경영 ~ 현재(1978~2014)

1938년에 출생한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 루이 뒤마가 1978년에 에르메스를 맡으면서 5세대 경영이 시작되었다. 장 루이 뒤마는 사촌들의 도움을 받아 에르메스에 변화를 가져왔다. 장 루이 뒤마는 에르메스에 실크, 가죽, 기성복 라인을 더욱 발전시켰고, 스위스 베른(Bern)에 시계부문 자회사인 ‘라 몽트르 에르메스(La Montre Hermès SA)’를 설립하였으며, 이어 팔찌, 자기, 크리스탈 등의 제품 라인을 추가하며 에르메스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1980년에는 19세의 젊은 디자이너 에릭 베르제르(Eric Bergere)를 에르메스 여성복의 디자이너로 임명했다.

1980년대 에르메스는 패션 디자이너와의 교류를 통해 에르메스가 가진 전통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이에 1988년 1월, 에르메스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로 베로니크 니샤니안(Veronique Nichanian)을 영입했다. 베로니크 니샤니안은 ‘에콜 드 라 샹브레 신디칼 드 라 꾸뛰르 파리지엔(L’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Parisienne)’을 졸업하고 세루티(Cerruti)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로 12년 동안 경력을 쌓은 디자이너였다.

베로니크 니샤니안은 에르메스에 합류한 1988년, 파리 ‘젊은 패션 디자이너 경연(Young Fashion Designers Competition)’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2009년 2월 에르메스 남성 제품군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한편, 1992년 에르메스는 파리 인근의 팡탕(Pantin)지역에 대형 유리 건물을 짓고, 장인들이 제품을 제작하는 아틀리에(Atelier)와 디자인실을 새로운 건물로 이전했다. 이 건물은 장 루이 뒤마의 아내이자 그리스(Greece) 출신의 건축가인 레나 뒤마(Rena Dumas)가 디자인을 맡았다.

1997년, 에르메스는 벨기에(Belgian)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를 여성복 컬렉션의 디자이너로 새롭게 임명했고, 1999년에는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지분 35%를 인수했다. 2002년에는 에르메스 하우스를 위해 구두를 디자인해온 디자이너 피에르 하디(Pierre Hardy)를 필두로 에르메스 주얼리 라인이 론칭되었고 2003년에는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에르메스 여성복 컬렉션의 새로운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2004년 에르메스의 CEO가 된 파트릭 도마(Patrick Thomas)는 에르메스 가문이 아닌 에르메스의 첫 번째 전문 경영인이 되었다. 2006년 1월, 장 루이 뒤마는 은퇴를 선언했고 2010년 5월 사망했다. 2010년부터는 라코스테(Lacoste)의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가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2014년 3월에는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의 증손자인 악셀 뒤마(Axel Dumas)가 CEO를 맡음으로써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다시 오너 체제로 변경되었다.

2. 에르메스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에르메스 가죽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스티치, 즉 박음질이다. 이는 에르메스 역사의 시작인 마구 및 안장을 만드는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장에 쓰는 전통 수공 박음질 기술인 새들 스티치와 함께 가죽의 절개된 단면을 광택 처리하는 기술은 에르메스 가죽 제품에 쓰이는 수많은 작업의 일부인 한편 에르메스를 특별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새들 스티치는 에르메스의 안장 제품뿐 아니라 가방, 벨트, 장갑, 시계 스트랩, 기성복, 장식품 등 에르메스의 모든 가죽 제품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인 표시인 동시에 에르메스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에르메스 새들 스티치는 왁스를 입힌 프랑스산 리넨 실에서 시작된다. 실 양쪽 끝으로 바늘이 꿰어져 있으며, 두 번 겹쳐진 바느질이 두 장의 가죽을 이어줌으로써 튼튼한 제품이 만들어진다. 하나의 스티치가 끊어지더라도 다른 하나의 스티치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새들 스티치는 가죽 종류, 제품의 크기에 따라 2.5cm당 5번에서 14번까지 이루어진다.

새들 스티치는 특정 도구를 가지고 수개월의 훈련을 거친 전문가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엄격한 품질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계로 한 박음질과는 달리 방향은 항상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해야 하고, 모든 스티치가 동일한 조임과 사이즈로 이루어져야 한다.

2) 샹 당크르(Chaîne D’Ancre)

에르메스 주얼리를 대표하는 디자인인 샹 당크르는 프랑스어로 닻줄이라는 의미로, 1938년 4대 에르메스 회장인 로베르 뒤마가 부두 근처를 산책하며 배에 연결된 닻을 보고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것이다. 당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에서 모토를 따온 에르메스의 샹 당크르는 브랜드의 중요한 영감 중 하나인 ‘여행’을 상징한다.

샹 당크르는 처음에는 주얼리 컬렉션에 사용되어 팔찌 등으로 선보였지만 점차 가방, 실크, 홈 컬렉션 등 다양한 제품에 모티프로서 적용되는 에르메스 고유의 상징이 되었다.

 

3) 프랑스 최초의 지퍼 달린 가방, 볼리드 백(Bolide Bag)

에르메스의 3세대 경영자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미국에서 지퍼를 발견하고 이를 가방에 부착함으로써 1923년 프랑스에 처음으로 지퍼를 소개함과 동시에 프랑스 내 지퍼를 단 최초의 가방을 선보였다. 에르메스는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지퍼에 대한 프랑스 내 전매권을 가지고 있어 지퍼로 여닫는 획기적인 가방을 독점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스포츠 용품을 넣고 다니기 위한 여행용 가방으로 고안된 이 가방은 처음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었지만 198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다시 소개되면서 ‘부가티(Bugatti)’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가티’는 경주용차로 이름을 날린 프랑스 자동차 회사 이름이기도 했는데, 자동차로 운반하기 좋은 여행 가방이라는 콘셉트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었다. 1994년, 부가티는 빠른 자동차라는 뜻의 ‘볼리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다.

3.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 라인

에르메스의 제품 카테고리는 마구용품, 여성복, 남성복, 가방, 신발, 주얼리, 시계, 가구, 가죽아이템, 모자, 장갑 등 총 14개의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안장 및 마구용품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안장과 마구용품 매장을 낸 것을 시작으로 6대손에 경영을 승계하기까지, 에르메스는 마구 제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때 마구용품 산업은 자동차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에르메스는 안장 스티칭 기법인 새들 스티치를 다른 가죽 제품과 여행용 가방 라인 제작에 사용하며 기술의 명맥을 유지해왔고 꾸준히 다양한 안장 및 마구를 개발하고 생산해왔다. 안장과 마구용품은 에르메스의 상징적인 대표 상품이다.

2) 가방

에르메스의 가죽 가방은 100% 프랑스에서 장인에 의해 제작되어 왔다. 에르메스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죽 장인 학교에서 3년 공부를 마친 후, 아틀리에에서 2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며 장인 수련 기간 동안에 제작하는 가방은 상품화되지 못한다. 에르메스 가죽 아틀리에에는 현재 2,400여 명의 가죽 장인이 있는데 프랑스 노동법상 주간 근로 시간은 33시간이므로 한 명의 장인이 18시간 동안 제작하는 켈리 백이나 22시간 동안 제작하는 버킨 백은 일주일에 두 개도 채 완성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메스는 장인들에게 잘 팔리는 제품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고 한다. 장인들에게 특정 아이템의 제작만을 요구하면 장인들의 손끝은 무디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에르메스의 켈리 백과 버킨 백은 늘 공급이 부족하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보통 1년, 2년이 지나야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 켈리 백
켈리 백은 1837년, 에르메스 창립 당시 기수들이 사냥을 나갈 때 사용하던 ‘새들 캐리어(Saddle Carrier)’라고 불리는 백으로 처음 선보여졌다. 이후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만들어지면서 ‘쁘띠 삭 오뜨 아 크루아(Petit Sac Haute A Courroie)’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었는데, 1956년,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자신이 임신한 것을 가리기 위해 빨간색 악어 가죽으로 만든 에르메스의 쁘띠 삭 오뜨 아 크루아를 든 사진이 ‘라이프(Life)’ 잡지의 표지에 실리며 켈리 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켈리 백은 에르메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베스트 셀러(Best Seller)로서, 28cm, 32cm, 35cm 등 다양한 크기로 매시즌 새로운 버전이 선보여지고 있다.

· 버킨 백
켈리 백만큼이나 잘 알려진 버킨 백은 영국 출신 모델이자, 프랑스의 유명한 음악가 겸 예술가인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전 부인인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제인 버킨은 1970년대 중반, 멋스러운 편안함과 자유분방함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이었다. 1984년, 에르메스의 5대 회장 장 루이 뒤마가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제인 버킨이 밀짚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다가 소지품을 쏟는 것을 보고 그녀를 위해 수납이 잘 되는 검정색 가죽 가방을 제작해주면서 버킨 백이 탄생하게 되었다. 버킨 백은 25cm, 30cm, 35cm, 40cm의 사이즈가 있다.

· 집시에르 백(Jypsière Bag)
에르메스가 2008년에 선보인 집시에르 백은 기존의 버킨 백을 메신저 백(Messenger Bag, 가방의 줄을 어깨에 매는 형태의 가방으로 우편 배달부의 가방에서 유래되었다) 형태로 변형시킨 모델이다. 집시에르 백은 버킨 백의 스트랩, 금속, 버클, 그리고 백의 가장 최고점인 모서리 마감, 스티칭 작업 등의 디테일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옛날 사냥꾼, 농부, 어부들이 어깨에 매고 다녔던 '게임 백(Game Bag)'에 착안한 실용적인 크로스백 형태인 것이 특징이다. 에르메스의 전 여성복 디자이너였던 장 폴 고티에에 의해 탄생했으며 원래 여성용으로 제작되었으나, 큰 사이즈 모델은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 툴박스 백(Toolbox Bag)
툴박스 백은 에르메스가 2010년도에 처음 선보인 가방이다. 작은 외관에 비해 넓은 내부 수납 공간을 가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넓은 스트랩을 적용하여 어깨에 매기 편안하도록 고안되었으며 캐주얼(Casual)한 분위기도 겸비하게 되었다. 부드러운 송아지가죽이나 악어가죽 소재로 제작된다.

· 베를린 백(Berlin Bag)
베를린 백은 에르메스가 2011년, 스포츠 쿠페(Coupe)의 가죽 시트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것으로 전면에 패딩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쿠션을 넣은 가죽 부분에는 에르메스가 말 안장을 만들 때 적용한 패딩 노하우를 담았다고 한다. 2013년 봄/여름 시즌에는, 사이즈는 작게 하고 비스듬하게 몸에 걸칠 수 있도록 스트랩은 좁고 길게, 잠금 장치는 원래 크기를 유지하는 식으로 변형되었다.

3) 에르메스의 실크 제품

· 까레(Carre)
1937년, 에르메스의 4대 회장인 로베르 뒤마는 군인들이 지령이나 지도를 프린트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를 여성복 라인을 통해 선보이기를 원했고, 유명한 실크 기술공들이 많은 리옹(Lyon) 지역에서 가로, 세로 90cm 정사각형의 여성용 실크 스카프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에르메스의 실크 스카프 ‘까레’이다. ‘까레’는 프랑스어로 정사각형이란 뜻이며, 이름처럼 에르메스의 스카프는 정사각형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왔다. 에르메스의 첫 번째 까레는 1937년 마들렌(Madeleine)과 바스티유(Bastille) 간 버스 노선 개통을 기념하여 만든 ‘쥬 드 옴니버스 에 담므 블랑쉐(Jeux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였다.

이후 에르메스는 매시즌마다 대략 여섯 가지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왔으며 지금까지 선보인 까레 디자인은 900개가 넘는다. 에르메스의 까레가 지도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만큼 까레는 단순히 보조적인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스카프에 머물지 않는다. 에르메스는 까레에 동물과 사물 등의 다양한 모티브를 적용하여 독립적인 아이템으로 승격시켰고, 에르메스 스카프를 패션 아이템을 넘어 예술작품처럼 액자에 넣어 수집하는 이들이 생기기도 했다. 에르메스의 까레는 스카프 일러스트레이터(Scarf Illustrator)라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고, 에르메스와 아티스트와의 협력 관계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도록 했다. 에르메스 까레는 90cm 사이즈가 기본형이며 이 밖에도 50cm, 140cm, 70cm 사이즈로 출시되고 있다.

· 남성용 타이
에르메스가 남성용 타이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 프랑스 칸(Cannes) 매장 매니저인 바비 브루워드(Bobby Breward)가 타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부터였다.

에르메스 칸 매장은 타이를 착용하지 않은 손님의 출입을 금하기로 유명한 카지노(Casino) 옆에 위치해 있었다. 급히 타이를 사기 위해 에르메스 매장에 들리는 손님들에게 타이가 없다고 설명하는데 지친 바비 브루워드는 당시 에르메스 회장인 로베르 뒤마에게 남성용 타이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여 실험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에르메스는 남성용 타이 사업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스카프에 이미 사용되고 있던 하우스의 실크 프린팅 노하우를 타이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에르메스의 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르메스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품군이 되었다.

4) 애나멜 뱅글(Enamel Bangle)

에르메스의 인기 액세서리 제품인 애나멜 뱅글 컬렉션은 1978년 처음으로 선보여졌다. 실크 스카프에서 차용한 모티프를 19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 애나멜 공법으로 표현하고, 너비 또한 다양하게 선보였다. 1993년에는 브래스(Brass) 소재에 금을 도금한 ‘클릭 클락(Clic-Clac)’ 뱅글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는 눌러서 여닫는 제품으로 클릭 클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현재는 버클을 회전하여 여는 방식으로 수정하여 출시하고 있다. 이후 순은 소재로 제작된 클릭 클락을 출시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주며 매시즌 에르메스 고객들이 찾는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5) 시계

1912년, 에르메스의 3대 회장인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둘째 딸에게 에르메스에서 제작한 첫 손목 시계 ‘포르트 오이뇽(Porte Oignon)’을 선물했다. 포르트 오이뇽은 회중시계에 가죽을 감싸 손목시계처럼 착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그 후 1928년, 골프(Golf)를 즐기는 고객을 위해 에르메스가 제작한 벨트 워치(Belt Watch)는 에르메스 매장에서 처음으로 판매되었던 시계였으며, 같은 해 에르메스의 회중시계와 손목시계가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 매장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보다 완벽한 무브먼트(Movement, 시계의 동력 장치를 뜻함)와 시계 생산의 집중도를 향상 시키기 위해 에르메스는 1978년 스위스(Switzerland) 비엘(Biel)에 자회사 ‘라 몽트르 에르메스’를 세웠다.

· 아쏘(Arceau)
앙리 도리니(Henri D’Origny)가 디자인한 에르메스 시계 아쏘는 1978년에 처음 출시되었다. ‘등자’라는 뜻을 가진 아쏘는 원형의 시계로 독특한 비대칭적인 케이스를 갖고 있다. 1837년 파리에서부터 시작된 마구 장인 티에리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모델로서 에르메스의 시계 라인 중에서도 상징적인 모델이다.

· 에이치 아워(H-Our)
에르메스의 인하우스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필립 무케(Philippe Mouquet)에 의해 1996년 탄생한 에이치 아워 시계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이니셜인 ‘H’자의 케이스 디자인으로 에르메스를 상징하고 있다. 2011년에 새로 출시된 에이치 아워는 작고 간편한 도구를 함께 제공하여 전문가가 아니라도 스트랩(Strap)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스트랩을 두 번 감싸는 더블 투어(Double Tour) 시리즈도 잘 알려져 있다.

· 드레사지(Dressage)
2003년에 출시된 드레사지는 1925년에 에르메스가 최초로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를 선보인 것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지어진 ‘H1925 무브먼트’가 장착되어 있다. 스위스 비엘의 에르메스 워크샵(Workshop)에서 제작되고 오랜 시간에 거쳐 새들 스티치로 정교하게 마무리한 스트랩이 특징이다.

6) 라 메종(La Maison) 홈 라인

에르메스의 생활용품 컬렉션 ‘라 메종’ 홈 라인은 1924년에 시작되었다. 에르메스 가문의 4대손인 장 르네 게랑이 프랑스의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장 미셸 프랑크(Jean Michel Frank)에게 “당신의 가구에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들이 가죽 커버를 씌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장 미셸 프랑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들이 장 미셸 프랑크 가구에 새들 스티치로 가죽 커버를 씌우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가죽을 이용하여 의자, 가구 등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미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에르메스의 장인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작업했고, 이후 에르메스는 새로운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며 홈 라인을 꾸준히 확장시켜왔다.

1942년, 에르메스는 프랑스 장식 미술가인 폴 뒤프레 라퐁(Paul Dupre Lafon)이 디자인한 ‘홈 발레(Home Valet)’ 시리즈를 출시하며 ‘집’이라는 테마에 대한 에르메스의 꾸준한 관심을 표시했다. 이는 마호가니(Mahogany) 나무와 송아지 가죽, 놋쇠 등의 소재로 만든 스탠드형 옷걸이로 마치 누군가 옷 입는 것을 시중 들어주듯 남성용 수트와 넥타이, 액세서리, 시계 등을 한꺼번에 걸어놓고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1942년에 생산된 오리지널 버전의 홈 발레는 2007년 파리에서 열린 소더비(Sotheby’s) 경매 ‘아르 누보와 아르 데코 디자인 전(Art Nouveau & Art Deco Design sale)’에서 65,000달러에 판매되기도 했고 2010년에 재출시된 홈 발레 시리즈의 판매가는 약 3,000달러였다.

1950년대에는 야외 스포츠와 여가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의 에르메스 비치 타올(Beach Towel)이 널리 판매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에르메스는 도자기, 크리스탈, 텍스타일, 데커레이션 컬렉션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에르메스가 150주년을 맞은 1987년에는 실내 건축가 르나 뒤마(Rena Dumas)와 피터 콜스(Peter Coles)가 함께 ‘피파(Pippa)’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노마드(Nomad, 유목민)적인 삶을 지향하며 접이식 가구 콘셉트로 제작된 이 제품군은 에르메스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테마인 ‘여행’의 이상을 구현했다.

에르메스 홈 라인은 현재에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2010년 11월, 파리 세브르가 17번지(17, rue de Sevres)에 있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루테티아(Lutétia)’ 수영장 부지에 1,400m2 규모의 새로운 에르메스 매장을 열었는데, 이 곳의 1/3은 에르메스의 라 메종 홈 라인이 차지하고 있다.

2011년 4월, 에르메스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 가구, 패브릭(Fabric), 벽지 그리고 카페트(Carpet) 등을 총망라하는 홈 라인 컬렉션을 밀란 국제가구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Shigeru Ban)이 개발한 ‘모듈 아쉬(Module H)’라는 건축학적 모듈 시스템을 선보였다. 모듈 아쉬는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H’자 모양의 모듈을 자유롭게 조합, 파티션으로 만들어 공간을 분리하거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개념의 시스템이다. 에르메스는 모듈 아쉬를 통해서 에르메스 홈 라인의 영역을 인테리어 공간까지 확장했다. 2013년 4월, 에르메스는 밀란 국제가구전시회에서, ‘레 네쎄쎄어 데르메스(Les Necessaires D’Hermes)’라는 새로운 홈 라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가구 라인은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니그로(Philippe Nigro)가 디자인했다.

4. 에르메스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에르메스 인터내셔널(Hermès International, S.A.)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로 1880년에 문을 연 파리 생토노레에 지금까지도 본사가 있다. 에르메스는 여성복, 남성복, 가죽제품, 향수, 시계, 도자기, 가구 등의 제품을 판매한다. 1989년 에르메스 인터내셔널 사장으로 에르메스에 합류한 파트릭 도마가 2004년 에르메스 가문이 아닌 첫 번째 전문 경영인 체제를 형성하며 CEO가 되었고, 2014년 3월부터는 다시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의 증손자인 악셀 뒤마(Axel Dumas)가 CEO를 맡음으로써 8년 간의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시대로 복귀했다.

악셀 뒤마가 에르메스 경영진에 합류한 것은 에르메스를 인수합병하려는 LVMH로부터 가업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LVMH는 2014년 에르메스 지분의 23%까지 차지했다. 악셀 뒤마 이외에도 40여 명의 창업주 6대손 10여 명이 합류해 굳건한 가문 경영 제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2) 연관 브랜드

에르메스 인터내셔널 그룹은 시계 메이커인 ‘라 몽트레 에르메스(La Montre Hermès)’, 크리스탈 메이커인 ‘크리스털리 로열 드 생루(Cristalleries De Saint-Louis)’, 실버웨어 전문 브랜드인 ‘퓌포카(Puiforcat)’, 영국의 수제화 브랜드인 ‘존 룹(John Lobb)’, 중국의 생활용품 브랜드 ‘샹 시아(Shang Xia)’ 등을 소유하고 있다.

· 존 룹
존 룹은 1864년, 구두장인 존 룹이 만든 영국의 슈즈 브랜드이다. 처음에는 왕실과 귀족을 위한 맞춤슈즈만을 제작했으나 에르메스가 1976년 존 룹을 인수한 후 맞춤슈즈에 기성라인을 더하고 미국, 유럽, 아시아, 중동 등 주요 도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기성품을 만들기 위해 190개의 공정을 거칠 정도로 품질에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국내에도 영국의 수석 장인이 1년에 1-2회 방문하여 고객의 발의 특징에 꼭 맞는 비스포크(Bespoke) 맞춤 구두를 제작한다.

· 샹시아
에르메스가 2010년 가을, 중국을 위해 특별히 중국 현지에서 론칭한 브랜드로 ‘중국의 에르메스’라고 불린다. 브랜드의 아티스틱 디렉터는 지앙 키웅얼(Jiang Qiong-er)로 고대 중국 전통의 영감을 주얼리, 직물, 데코, 가구, 생활용품 등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 퓌포카
1820년, 에밀 퓌포카(Emile Puiforcat)가 두 명의 사촌과 함께 론칭, 포크와 나이프 등의 커틀러리(Cutlery) 등을 제조하는 프랑스의 실버웨어 전문 브랜드이다. 1929년 현대 예술가 연맹의 공동 창시자이자 에밀 퓌포카의 4대손인 장 퓌포카(Jean Puiforcat)가 실버웨어에 조각 작품과 같은 예술적인 디자인을 더해 주목 받았다. 현재도 프랑스를 방문하는 국빈을 위한 가치 있는 선물로 종종 제공되며 궁의 공식 식사, 연회에서도 사용된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에도 퓌포카의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3)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에르메스는 2014년 기준, 전 세계 50개국에 진출해 있고 매장은 총 320여 개이다. 이 중 205개의 매장만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전 세계 에르메스 직원은 1만 1,037여 명이다. 에르메스는 지속적으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선보이는 동시에 각 지역의 문화를 중시하여 운영해 나가고 있다.

한국에는 1997년에 지사를 설립했고, 2006년 11월에는 도산공원 앞 플래그십 스토어인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만들었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는 파리, 뉴욕(New York), 도쿄(Tokyo)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지은 에르메스의 단독 건물이다.

4) 브랜드 가치

에르메스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선정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 (Best Global Brands 100)에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랭크되고 있다.

명품 전문 시장 조사 업체인 알파밸류(Alphavalue)의 피에르 이브 고티에(Pierre-Yves Gauthier) 리서치 책임자는 ‘에르메스 장인 1명의 가치는 330만 유로로서 소시에테 제네랄(Société Générale, 프랑스의 금융그룹)은행에 있는 인재보다 30배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은 디올, 펜디, 셀린, 지방시 등 60여 개 명품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에르메스를 손에 넣을 때 진정한 명품 그룹이 완성된다고 보고 꾸준히 에르메스의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면서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는 거의 남지 않았다’며 ‘에르메스는 명품업계의 보석 같은 회사’라고 에르메스를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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